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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거창 수승대

by 산과 자연 2006. 8. 15.

 
월성계곡

덕유산과 지리산, 가야산 등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거창에서도 지대가 높고 산세가 아름다운 이곳 월성은 흔히 『하늘마을』로 통한다. 월성계곡은 남덕유산(1507.4m) 동쪽 자락의 월성천을 따라 형성된 길이 5.5㎞의 계곡이다. 흔히 거창의 피서지로는 수승대와 금원산 일대를 최고로 꼽지만 호젓하기로는 월성계곡이 더 우위를 차지한다.
 

거창읍내에서 거열산성군립공원, 수승대를 차례로 지나고 북상면사무소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면서도 넉넉한 기품을 가진 남덕유산 방향으로 들어가면 병곡리와 산수리로 들어가는 갈림길 삼거리에서부터 월성계곡이 시작된다. 계곡의 폭은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주변 산세가 워낙 거대해 수량이 풍부한 편이다. 계곡 물놀이와 더불어 젖은 옷과 몸을 말리기에도 좋은 바위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고 계곡물은 그 바위 사이를 헤집으며 작은 폭포도 만들고 여울도 만들면서 갈계리의 위천계곡과 수승대계곡으로 흘러내려간다. 상류로 올라가면 장군바위쉼터 등이 나타나고 월성1교에 이르기까지 계곡욕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들이 계속 나타난다. 산수마을 입구에서 마학동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좁은길로 우회전해서 가면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산수리 언덕의 절경을 감상하며 병곡리로 내려오는 코스도 권장할만 하다. 간간이 계곡을 향해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너른 곳으로 내려설 수 있게 된다.

준비해간 텐트는 자그마한 모래톱이나 넓적한 바위 어디에 쳐도 좋다. 한밤의 계곡 물 소리는 도시인들에게 처음에는 시끄럽게 들릴지 모르나 조금만 익숙 해지면 자장가나 진배없다. 월성계곡은 남덕유산 등산 기점인 황점 매표소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매표소 앞을 지나 포장된 도로를 따라가면 해발 800m 가까이 되는 남령을 넘어 덕유산 종주 기점인 함양군 서상면 영각사로 이어지는데 산세가 아름다워 드라이브 코스로도 더할나위 없이 좋은곳이다. 남령 고갯마루에 서면 거창, 함양 일대의 산군과 멀리 지리산 능선까지 조망할 수 있다. 거창읍에서 20분, 지곡 IC에서 35분, 서상 IC에서 15분 소요된다.

 

금원산

금원산의 본디 이름은「검은 산」이다. 옛 고현의 서쪽에 자리하여 산이 검게 보인데서 이름하였다. 이 산은 금원암을 비롯하여 일암(一岩), 일봉(一峰), 일곡(一谷)이 모두 전설에 묶여 있는 산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옛날 금원숭이가 하도 날뛰는 바람에 한 도승이 그를 바위 속에 가두었다 하며, 그 바위는 마치 원숭이 얼굴처럼 생겨 낯바위라 하는데 음의 바꿈으로 납바위라 부르고 있는 바위, 비 내림을 미리 안다는 지우암(知雨岩), 달암 이원달 선생과 그의 부인 김씨와 얽혀 이름한 금달암(金達岩), 효자 반전이 왜구를 피해 그의 아버지를 업고 무릎으로 기어 피를 흘리며 올랐다 하는 마슬암(磨膝岩), 중국의 5대 복성중 하나로서 감음현을 식읍으로 받아 입향한 서문씨(西門氏)의 전설이 얽힌 서문가(西門家) 바위, 하늘에서 세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 하는 선녀담(仙女潭)들이 널려 있다.

금원산에는 크게 이름난 두 골짜기가 있다. 성인골(聖人谷) 유안청(儒案廳)계곡과 지장암에서 와전된 지재미골이다. 유안청계곡은 조선 중기 이 고장 선비들이 공부하던 유안청이 자리한 골짜기로 유안청폭포를 비롯한 자운폭포와 소담이 주변 숲과 어우러져 산악경관이 빼어난다.
지재미골은 서문씨의 전설을 안은 서문가 바위와 옛날 원나라에서 온 공민왕비 노국대장공주를 따라서 감음현을 식읍으로 받아 살았던 이정공 서문기(理政公 西門記)의 유허지로 그 자손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전한다.
지재미골 초입에는 문바위와 차문화을 꽃피웠던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이 있다.

 

송계사

신라 진덕여왕 6년(652)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영취사와 송계암 등 5개의 부속암자를 세웠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숙종(1675~1720)때 진명대사가 다시 지었으나 6.25 전란으로 또 소실되었다.

1969년에 다시 신축된 이 절에 건물4동, 아미타불상1점, 작은종1개, 탱화3점이 있다. 99년 전기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대웅전 소실, 복원하였다.

 

황산리 신씨고가

이거창 신씨(居昌愼氏) 집성촌인 황산 마을에 있으며 일명 「猿鶴古家」라 칭한다. 주요건물은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후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27년에 건립한 것으로 검소한 양식에 서민적인 전통 한옥 특징을 갖추고 있다.

 

정온선생 생가

동계(桐溪) 정온(鄭蘊, 1569~1641년)선생의 사당을 모시고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종택으로 대문채, 큰사랑채, 중문간과 중사랑채, 곳간채, 안채, 안사랑채, 사당, 토석 담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는 솟을대문이며 인조(仁祖)임금이 내린『文簡公桐溪鄭蘊之門』의 정려(旌閭) 현판이 걸려 있다.
정면 6칸, 전퇴(前退)가 있는 2칸 반의 사랑채는 ㄱ자형이며 사랑채 상량대에는 "崇禎紀元後四庚辰三月"이라 적혀 있는데 이는 순조(純祖) 20년(1820)에 해당된다. 사랑채 마루벽에 정조임금이 지은 현판이 걸려 있는데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日長山色碧嵯峨 種得乾坤正氣多 세월은 흘러도 산은 푸르고 높으며/정의로운 기운은 온 천지에 가득하네/ 北去南來同一義 精金堅石不會磨 북으로 가거나(金尙憲이 심양에 간것) 남으로 오거나(정온을 모시로 온것) 의리는 매 한 가지/금석같이 정결하고 굳은 절개는 아직도 삭아 없어지질 않았다. (崇禎四庚年 居昌府使金麟渟謹書)

 
갈계리 임씨고가

이 건물은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효자로 이름이 높앗던 갈천 임훈(葛川 林薰) 선생이 거처하던 가옥으로 중종 2년(1507)에 지은 것이다.
가옥의 구조는 솟을대문채, 사랑채, 안채, 장판각(藏版閣),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에는 정려(旌閭)가 걸려 있고 홍문의 초석이 거북머리로 되어 있는데 작품성이 뛰어나다.

안채는 선생의 호를 따 자이당(自怡堂)이라 부르며 정면 5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이다. 안채 옆에 갈천 선생과 동생 임운(林芸) 선생의 문집책판을 보관한 장판각과 사당이 있다.

 
갈계숲

이 곳의 본래 이름은 은사(隱士)의 정원을 이르는 임정(林亭)이다. 면적 2ha에 평균 수고 22m의 아름드리 2~3백년된 소나무, 물오리나무, 느티나무 등이 군림을 이루어 지난 1982년 11월 23일 거창군 천연보호림 제2호로 지정되었다.


덕유산 기슭에서 발원한 원천이 송계를 지나 갈천(葛川)에 이르러 동서로 나뉘어 흐르면서 시냇물이 자연섬을 만들고 수목이 우거져 아름다운 풍치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조선조 명종때 유현(儒賢) 석천 임득번(林得蕃)과 그의 아들 효간공, 갈천 임훈 등 삼형제와 문인들이 시를 지으며 노닐던 곳으로 숲안에는 가선정, 도계정, 병암정, 신도비 등이 세워져 지조 높은 선비들의 학덕을 기리고 있다.

갈천선생 호를 따서 세워진 가선정이 있어 가선림이라고도 하고 마을 이름을 따 치내숲이라고도 부르며 청학교가 놓인 뒤 청학림이라고도 하는데, 임정 가선림 청학림 모두 학덕 놓은 선비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자가용 이용시
 
1. 88고속도로 상.하행선
거창IC ⇒ 거창시내 ⇒ 진주.함양방면 3번국도직진 ⇒ 마리면삼거리 우측방향 ⇒ 위천 . 북상면방면
⇒ 위천수승대 (16km/20분정도 소요)
 
2. 대진고속도로 상.하행선
함양읍. 지곡 IC ⇒ 거창방면 직진 ⇒ 함양.안의면 ⇒ 거창.마리면방면 37번국도 ⇒
마리면삼거리 좌측방향 ⇒ 위천.북상면방면 ⇒ 위천수승대 (약40km/40분정도 소요)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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