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게시판

잘늙은 절 한채 완주 화암사

by 산과 자연 2024. 7. 30.


2024년07월26일

잘늙은 절 한채"를 찾아 가는길 - 안 도 현



인간세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 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 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안도현 시 <화암사, 내 사랑>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