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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산행 사진

정여립의 은신처였던 진안 천반산 산행

by 산과 자연 2012. 9. 8.

                                      정여립의 은신처였던 진안 天盤山 산행

 

* 2012년 08월 11일 토요일 맑고 화창한 날에

 

* 천반산 휴양림 입구 - 능선길 - 천반산 깃대봉 - 성봉 - 원점 회귀 ( 약 8km 4시간 소요)

 

* 천 반 산(647m)

 

전라북도 진안군과 장수군의 경계에 위치한 천반산은 사방이 깍아지른 험준한 절벽으로 에워싸여 있다.

백두대간 덕유산 연봉의 끝자락인 장수덕유(남덕유산 서봉)에서 지맥하나가 남서쪽으로 나뉘어서 삿갓봉과 두루봉을 지나 영구산에서 두 갈래를 친뒤

 남쪽으로 내달리다가 삼면이 금강에 가로막혀 멈춰섰으니 바로 천반산이다.

장수의 5대명산으로 불리는 천반산은 장수의 북방을 수호하는 수문장이기도 하다.


천반산이란 지명의 유래를 고찰해보면 퍽 이채롭다. 첫째는 서쪽 산정 1천여평의 분지가 하늘(天)에서 보면 마치 소반(小盤)모양이라는 데서 왔다는 설이다. 둘째는 이산 남쪽 가막리에 경주 정씨가 400년 전에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마을 앞 냇가에 있는 “장독바위”가 하늘에서 떨어진 복숭아 형상

즉 천반낙도(天盤落桃) 형상이라는 애기가 있다. 셋째는 천반, 지반, 인반의 명당중에서 이 산은 천반에 해당하는 명당이 있기 때문이란다.

 

이곳 천반산은 선조 3년 25세에 문과에 급제해 수찬 벼슬을 지낸 정여립(鄭汝立)이라는 사람이 임금(선조)의 미움을 사 벼슬을 버리고 전주 고향으로 낙향해 전국의 장사를 모아 천반산성에서 군사훈련을 도모했다고 전해오는 곳이다. 특히 “만민은 평등하고 천하는 군주(君主)들의 사유물이 아니라 만백성의 것이다”라는 대동사상의 발로로 전주에서 대동계(大同契)를 조직, 신분을 가리지 않고 가입시켜 활쏘기 등 군사훈련을 하는 사 조직을 만들어 사상을 전파했다.

 

이에 조정은 유교사상을 배격하는 혁신적인 행동을 막기위해 금부도사를 파견, 붙잡으로 오자 졍여립은 죽도가 있는 진안으로 탈출하였으나 관인에게 발각되어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천반산에는 정여립이 성터와 망루로 사용했던 한림대터, 그가 뛰어 다녔다는 뜀바위 등이 남아있고, 군사를 훈련할 때 사용했다는 거대한 돌솥이 묻혀 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전망 바위에서 바라본 가막교 저 뒷편으로 진안 마이산도 보이고~

 

천반산 가는길 동향 마을 에서 필요한 물품사면서 바라본 풍광

 

동향 마을에서~

 

 

 무덥고 뜨거웠던 날이 한바탕 비가 오고난후 서늘한 바람도 부는 화창한 주말  장수 김선배와 함께  천반산 휴양림에서 만나 산행을 한다~

 

 11: 50  휴양림 앞 개울에는 피서객이 물놀이도 하고~~

 

 

       지난 5월에 첫번째 시도 했었던 산행이 초입을 잘못 접어드는 바람에 실패 하고 두번째 산행이 휴양림에서 시작 한다~~

 

 오르는 능선길목에서 바라본 조망 마이산이 아스라이 보이고~

 

 

힘겹게 오르면서 조망터에서 내려다본  구량천

 

 

 

 맑고 깨끗한 조망이 확트여서  땀흘리면서 올라온 보람이 느낄수 있었다~~

 

13 : 20   가파르게 올라온 등산로에서 잠시 잠시 조망을 하면서 천반산 깃대봉에 도착한다~ 무더위가 한풀 꺽인 날씨덕에 그리 힘들진 않었고~

                  

                    천반산의 실질적인 정상석~

 

 

 

 

 

 

 

 장전 마을 가는길목에서 바라본 가막교 풍광~

 

 가막교를 당겨 본다~

 

조망바위에서 성터 능선을 보고

 

 

 

 

조망 바위에서  사방댐 과 임도길  이길은 5월에 초입을 잘못 들어서 걸었던 길이기도 하다 그땐 사방댐 공사가 한참 이었는데~

 

 

조망 바위 바로앞에 멋진 노송 에서

 

 

 

 하산길에 내려다본 풍광

 

 14 : 50  원점으로 하산 해서 초입  에서

 

맑고 화창한 날씨에 늦은 피서를 하고 있는 피서객들